스타즈 - 위대한 도전! 승리의 그레이터스!
1976년 6월 24일, 한국남자실업배구계에 조용한 변화가 일고 있었다. 이날 체육회관 10층 강당에서는 김택수 대한체육회장, 이낙선 배구협회장을 비롯, 많은 체육계 인사들과 구자경 럭키그룹회장 등 각계 인사들의 축하 속에 금성통신배구단(당시 정식 팀 명칭은 금성배구단) 창단식이 있었다. 해방 이후 수 많은 실업남자팀이 생겨났다가 어느날 갑자기 사라져간 전례에 비춰보면 새로운 팀의 창단은 그다지 요란할 것 없는 조용한 변화임에 틀림없었다.
그러나 이날 한국기업의 간판주자였던 럭키금성그룹이 금성통신배구단을 출범시킴으로써 한국실업배구계는 상당히 의미있는 변화를 가져오게 됐다. 금성통신배구단의 출현은 남자실업배구계에 본격적인 민영팀 시대를 알리는 신호탄이 된 것이다.
본격 민간배구팀인 금성통신배구단의 탄생은 향후 새로운 민간실업배구팀의 출연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금성통신의 창단 이듬해인 1977년 현대남자배구단 창단설이 파다해지면서 강만수의 스카우트를 싸고 금성통신과 현대 사이에 한바탕 소란이 일더니 80년을 넘어서 올림픽, 아시안게임 유치를 계기로 국내에 스포츠붐이 불어닥치자 고려증권, 현대자동차서비스, 대한항공 등이 속속 배구팀을 창단함으로써 그 가능성은 현실로 나타났다.
1976.09.25 제31회 전국 남녀 종별 배구 선수권대회 우승
1976.10.30 제15회 박계조배 전국 남녀 배구대회 우승
1977.03.11 제1차 실업 배구 연맹전 우승
1977.04.25 제32회 전국 남녀 종별 배구 선수권대회 우승
1977.06.28 제16회 박계조배 전국 남녀 배구대회 2위
1977.09.21 제2차 실업 배구 연맹전 우승
1977.10.10 제58회 전국체육대회 2위
금성통신의 최전성기랄 수 있는 창단 이래 초창기에 금성통신이 국내경기에서 거둔 통산성적은 21승 4패. 이 기간 동안 거머쥔 타이틀은 종합선수권 2회, 종별선수권 2회, 실업연맹전과 박계조배대회 각각 1회 우승으로 모두 6개. 이 기간 동안 열린 국내성인남자배구대회는 모두 11차례에 불과해 반 이상을 금성통신이 석권했다.
80년대 초반까지 금성통신의 고충은 대회우승 자체보다도 출전한 국내대회가 별로 없다는 데 있었다. 실업배구연맹 소속 남자실업팀은 금성통신을 비롯해 한국종합화학, 한국전력, 보안사팀이 해체된 후 생겨난 육군통신교 등 4개팀이 전부였는데, 이들팀들은 때로 소속선수들의 군입대를 둘러싼 불화와 ‘나가보나마나’ 라는 소극적 태도 때문에 대회출전을 포기하기도 해 아예 대회자체가 무산되는 경우가 많았다.
국내무대는 금성통신에게 있어서 너무나 비좁은 것이었다. 더구나 창단 이후 강두태, 강만수, 김호철, 송병만, 이희완, 후국기 등 당대에 내로라하던 스타플레이어들이 속속 금성통신에 입단, 금성통신은 그야말로 스타들의 집합소가 됐고 당시 배구 선수들에게는 꿈의 팀으로 불릴만큼 단연 선망의 대상인 팀이었다.
금성통신은 일찌감치 국내무대의 한계를 인식하고 단일실업팀으로 세계 최강을 지향하면서 국제무대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1978년 6월 수에즈운하 재개통을 기념하는 이집트 국제친선배구대회에 참가한 것을 시발로, 1979년 9월에는 서독 및 사우디아라비아 친선 배구대회 참가했고 80년 네덜란드 다이나모 국제배구대회에 참가한 한편, 독일, 벨기에 등에서 친선경기를 갖기도 했다. 이 밖에도 금성통신은 세계 각국 클럽팀의 초청을 받고 해외원정에 나서 국내무대의 한계를 극복하는 한편 한국배구의 우수성을 각국에 심어줬다.
1978.03.03 제1차 실업 배구 연맹전 우승
1978.07.04 제33회 전국 남녀 종별 배구 선수권대회 3위
1978.09.21 제17회 박계조배 전국 남녀 배구대회 우승
1978.10.12 제59회 전국체육대회 3위
1979.01.20 제23회 대통령배 쟁탈 종합 배구 선수권대회 우승
1979.03.07 전반기 실업 배구 연맹전 우승
1979.05.17 제34회 전국 남녀 종별 배구 선수권대회 우승
1979.10.12 제60회 전국체육대회 3위
1980.02.05 제24회 대통령배 쟁탈 종합 배구 선수권대회 우승
1980.03.07 제1차 실업 배구 연맹전 우승
1980.04.20 제35회 전국 남녀 종별 배구 선수권대회 우승
1980.06.02 제19회 박계조배 전국 남녀 배구대회 우승
1980.06.24 제2차 실업 배구 연맹전 우승
1980.10.08 제61회 전국체육대회 우승
1981.04.18 제1차 실업 배구 연맹전 우승
1981.05.07 제36회 전국 남녀 종별 배구 선수권대회 우승
1981.12.02 제3차 실업 배구 연맹전 우승
1976년 6월 24일, 한국남자실업배구계에 조용한 변화가 일고 있었다. 이날 체육회관 10층 강당에서는 김택수 대한체육회장,이낙선 배구협회장을 비롯, 많은 체육계 인사들과 구자경 럭키그룹회장 등 각계 인사들의 축하 속에 금성통신배구단(당시 정식 팀 명칭은 금성 배구단) 창단식이 있었다. 해방 이후 수 많은 실업남자팀이 생겨났다가 어느날 갑자기 사라져간 전례에 비춰보면 새로운 팀의 창단은 그다지 요란할 것 없는 조용한 변화임에 틀림없었다.
그러나 이날 한국기업의 간판주자였던 럭키금성그룹이 금성통신배구단을 출범시킴으로써 한국실업배구계는 상당히 의미있는 변화를 가져오게 됐다. 금성통신배구단의 출현은 남자실업배구계에 본격적인 민영팀 시대를 알리는 신호탄이 된 것이다. 본격 민간배구팀인 금성통신배구단의 탄생은 향후 새로운 민간실업배구팀의 출연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금성통신의 창단 이듬해인 1977년 현대남자배구단 창단설이 파다해지면서 강만수의 스카우트를 싸고 금성통신과 현대 사이에 한바탕 소란이 일더니 80년을 넘어서 올림픽, 아시안게임 유치를 계기로 국내에 스포츠붐이 불어닥치자 고려증권, 현대자동차서비스, 대한항공 등이 속속 배구팀을 창단함으로써 그 가능성은 현실로 나타났다.
1976.09.25 제31회 전국 남녀 종별 배구 선수권대회 우승
1976.10.30 제15회 박계조배 전국 남녀 배구대회 우승
1977.03.11 제1차 실업 배구 연맹전 우승
1977.04.25 제32회 전국 남녀 종별 배구 선수권대회 우승
1977.06.28 제16회 박계조배 전국 남녀 배구대회 2위
1977.09.21 제2차 실업 배구 연맹전 우승
1977.10.10 제58회 전국체육대회 2위
금성은 팀 자체정비와 여러가지 계획 등을 마련했으나 신생팀들의 등장으로 이렇다 할 선수보강을 하지 못한 채 남자배구역사상 가장 뜨거운 쟁투가 벌어지는 83년을 맞이했다.
83년에 접어들어 금성의 독주시대는 막을 내리고 말았다. 현대자동차서비스의 돌풍, 고려증권의 거센 저항에 밀려 금성이 주춤거리면서 한국성인남자 배구판도는 트로이카 체제로 좁혀졌다. 이해 금성은 두차례의 실업연맹전 우승을 차지 과거의 영화를 누리지는 못했지만 아쉬운 대로 체면치레를 했다.
83년 팀간 스카우트전은 유례가 없을 만큼 치열했다. 84년 창설될 백구의 대제전 대통령배대회를 위한 포석이기도 했지만 금성으로서는 팀의 세대교체가 절실했다. 이에 따라 신인선수들을 대거 보강하여 팀의 면모를 쇄신, 대망의 대통령배 원년 우승을 향한 야심을 다졌다.
그러나 결과는 참패, 84년 대통령배 원년대회에서 신생 고려증권, 현대자동차서비스는 물론, 경기대에도 밀려 입상권 밖으로 밀려나는 수모를 당했다. 더구나 금성은 단 한차례도 우승하지 못해 금성통신시절을 포함, 팀 창단 이후 처음으로 무관의 제왕으로 전락하는 쓰라림을 맛봐야 했다.
승자의 쾌감에 길들여져 있던 금성에게 쓰라림은 반성의 계기를 제공했다. 금성은 85년 홍기택, 김상보 등을 보강해 대통령배 재도전, 1차대회 1위, 2차대회 2위를 차지하며 최종 결승에서 고려증권과 맞섰다. 그러나 장윤창, 류중탁이 분전한 고려증권에 석패, 아깝게 준우승에 머물고 말았다. 이 대회서 홍기택은 강두태와 함께 베스트6에 뽑히며 데뷔에 성공했다.
1984.01.14 제1회 대통령배 전국 남녀 배구대회 4위
1984.09.13 제22회 박계조배 전국 남녀 배구대회 2위
1984.10.11 제65회 전국체육대회 우승
1985.01.12 제2회 대통령배 전국 남녀 배구대회 2위
1985.05.09 제40회 전국 남녀 종별 배구 선수권대회 우승
1985.10.10 제66회 전국체육대회 우승
85년 대통령배 대회를 끝으로 1976년 창단이래 10여년간 부동의 감독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조배호 감독이 퇴진했다. 새로운 진용을 갖추고 옛 영화를 찾기에 절치부심한 끝에 85년 제40회 종별선수권대회를 우승하며, 83년 이후 2년 만에 정상에 오르는 기쁨을 맛봤다.
실업남자배구에 대한항공이 가세한 86년 이후 실업판도는 현대자동차서비스의 독주에 금성, 고려증권, 대한항공, 상무 등이 세찬 도전을 가하는 한편, 한양대, 경기대의 대학세가 패기를 앞세워 실업팀에 대한 열세를 만회하려는 저항이 거셌다.
금성은 이 같은 틈바구니 속에서 86, 87년 내리 2년간 무관을 기록하며 강호로서의 자존심을 상해야 했다.
금성팀이 국내 최초로 스포츠 법인회사 럭키금성 스포츠로 통합돼 위탁 관리되면서 새롭게 출발하였으나 강두태의 부상, 최봉호, 김상보의 은퇴로 인한 선수부족의 어려움 속에서 전력이 약화되면서 제5회 대통령배 대회에서는 대회사상 첫 예선탈락까지 하는 고통을 감수해야 했다.
1986.01.04 제3회 대통령배 전국 남녀 배구대회 3위
1986.06.20 제67회 전국체육대회 2위
1986.12.13 제24회 박계조배 전국 남녀 배구대회 3위
1987.01.17 제4회 대통령배 전국 남녀 배구대회 2위
1988.05.03 제43회 전국 남녀 종별 배구 선수권대회 우승
1989.07.04 제27회 박계조배 전국 남녀 배구대회 우승
80년대 신흥 강호들의 잇따른 등장으로 국내성인배구의 최정상의 자리를 내줘야 했던 금성을 90년대에 접어들어 정상탈환의 야심을 불태우며 팀을 재정비, 대권사냥에 나선다. 침체일로에 있던 팀분위기 쇄신을 위해 계열사인 호남정유에서 김용기 감독을 영입했고 이상렬, 서남원, 이영국, 황문석, 강호인 등을 보강, 고질적인 선수난도 해결했다.
92년 8월 1일 팀을 금성사에서 그룹계열회사인 럭키화재 해상보험주식회사로 이관시키고 팀명칭도 럭키화재로 바꿨다.
금성통신ㆍ금성을 거쳐 럭키화재 시대의 막이 올랐다. 90년대에 접어들면서 상승무드를 타고 있던 금성이 새로이 럭키화재로 신장개업하면서 새로운 준비를 통해 지나간 영광을 재현하기 위한 새로운 준비를 시작한다.
그 결과 1993년 전국남녀 종별배구선수권대회 우승을 시작으로 ‘95 한국배구 슈퍼리그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는 등 성공적인 정상 탈환을 선보임으로써 한국남자배구계의 확고한 선두주자로 자리매김했다.
1993.06.14 제48회 전국 남녀 종별 배구 선수권대회 우승
1994.10.15 제75회 전국체육대회 3위
1994.12.22 '95 한국 배구 슈퍼리그 2위
1995.10.02 제76회 전국체육대회 우승
1995.10.10 '95 한국 실업 배구 대제전 3위
1995.12.23 '96 한국 배구 슈퍼리그 3위
럭키화재에서 1995년, 팀명을 바꾼 LG배구단은 대대적으로 영향력 있는 선수를 보강함으로써 새로운 도약의 시대를 맞이했다. 탄탄한 조직력과 철저한 기본기를 바탕으로 젊고 강한 팀으로 새롭게 태어난 LG배구단은 빠르고 조직적인 배구를 구사함으로써 1995년 전국체육대회에서 우승, 96년 한국배구대제전 1차 대회 우승, 98년 한국배구대제전 2차대회 준우승 등 탄탄한 기량을 선보이며 한국남자배구계에 명문 구단으로 그 위상을 높여왔다.
이 시기 LG화재 배구단은 이상열, 최영준, 구본왕, 문병택 등 당대 최고의 스타들을 보유한 최고 인기구단이었다. 그러나 최고 인기구단의 명성에도 불구하고 종합대회 우승과는 인연을 맺지 못하는 불운한 시기를 보냈다.
1996.05.12 제51회 전국 남녀 종별 배구 선수권대회
1996.06.23 '96 한국 실업 배구 대제전 1차대회 1위
1996.10.08 제77회 전국체육대회 3위
1997.04.18 '97 한국 실업 배구 대제전 1차대회 2위
1997.05.12 제52회 전국 남녀 종별 배구 선수권대회 3위
1997.12.27 '98 한국 배구 슈퍼리그 3위
1998.04.11 '98 한국 실업 배구 대제전 1차대회 3위
1998.10.10 '98 한국 실업 배구 대제전 2차대회 2위
2000.04.30 2000년 한국 실업 배구 대제전 1차대회 3위
2000.05.03 제55회 전국 남녀 종별 배구 선수권대회 3위
2000.10.12 제81회 전국체육대회 3위
2000.11.04 2000 한국 실업 배구 대제전 2차대회 3위
2001.10.26 2001 한국 실업 배구 대제전 3위
2001.12.22 2002 한국 배구 슈퍼리그 2위
2003.10.21 2003 한국 실업 배구 대제전 2위
2005년 1월, 프로배구 출범 원년(元年)에 따라 LG배구단은 이에 발맞추어 팀 면모 또한 새롭게 일신(一新)하여 ‘그레이터스(Greaters) 배구단’ 이라는 이름으로 프로로서의 첫발을 내딛게 된다. LG화재가 추구하는 미래상(像)인 ‘Life Is Great’ 에서 따오게 된 ‘그레이터스’ 는 ‘최고의’ ‘우수한’ 이라는 사전적인 의미는 물론, 이를 바탕으로 한 파워 넘치는 플레이와 정상을 향해 매진(邁進)하는 배구단의 이미지를 최대한 부각시킨 이름으로서, 남자 프로배구를 선도하는 ‘명문 배구단’ 의 화려한 날갯짓으로 드높이 비상(飛上)하고자 하는 구단의 의지의 표현이다.
프로 배구 출범 후 LIG손해보험 배구단은 연고지를 구미로 하여 항상 팬과 함께 지역 주민과 함께 하는 구단이 되고자 최선의 노력을 다해왔다.
또한 프로 원년 LIG손해보험 배구단은 브라질 국가대표 출신 라이트 키드 선수를 영입하여 프로팀들과 좋은 경기를 펼쳤다. 아쉽게 최종 결승전에는 진출하지 못했지만 팬들에게 재미있는 경기를 보여주며 인기구단으로 자리매김했다.
2005. 04 2005 V리그 3위
2006. 04 2005-2006 V리그 3위
LIG구단은 2006-2007시즌을 대비, 캐나다 국가대표인 윈터스를 영입하여 새롭게 우승에 도전했다. 도하 아시안 게임에서 이경수를 주축으로 한 대표팀이 금메달을 따면서 배구경기장에는 많은 관중이 몰려들며 또다른 겨울 인기스포츠인 농구를 누르고 흥행에서도 새로운 역사를 썼다.
많은 기대와 설렘으로 시작된 시즌 개막전에서 LIG는 대한항공을 꺾고 좋은 출발을 했다. 그러나 이경수와 윈터스의 막강한 공격력을 살리지 못하고 최종 성적 4위에 머무르며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하는 아픔을 겪었다.
2007. 04 2006-2007 V리그 4위
2007년 모회사인 LIG손해보험 배구단으로 팀명을 변경하고 우승을 위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다. 이태리 리그 출신 박기원 감독을 영입하고 선수단 분위기를 일신하여 2007년 코보컵에 나섰다. 주장인 이경수 선수가 빠진 상황에서도 멋진 경기력으로 아쉽게 준우승을 차지하며 정규시즌에 대한 희망을 키웠다. 또한 대학 최고의 거포 김요한을 영입하여 최고의 공격력을 보유하게 됐다.
그러나 정규리그 시작 후 용병 팔라스카 선수의 스페인 대표팀 경기 출전, 국내선수들의 대표팀 차출 등으로 인해 초반에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결국 시즌 초반의 어려움을 극복해내지 못하고 플레이 오프에 진출에 실패하고 말았다.
2007. 10 2007 KOVO컵 준우승
2008. 04 2007~2008 V리그 4위
LIG손해보험 배구단은 선수단 정비와 함께 기존 선수 3명을 내주고 대학최고 세터 황동일 선수를 영입하는 대형 트레이드를 단행하여 우승에 대한 열정을 불태웠다.
시즌 중반까지 3위를 기록하며 플레이오프 진출의 희망을 이어갔으나 짧은 훈련시간으로 인한 선수들간의 호흡문제와 주전들의 부상 등으로 또 다시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지만 이경수, 김요한, 황동일 등을 보유하며 국내 최고의 인기구단으로 발돋움하였다.
또한 연고지 마케팅을 활성화하여 홈경기 평균관중의 비약적인 증가를 이끌었다.
2009. 04 2008~2009 V리그 4위
유난히도 아쉬움이 큰 시즌이었다. 프로 출범 후 지난 시즌까지의 경험을 바탕으로 실패를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 강도 높은 훈련으로 시즌을 준비했다.
1라운드를 전승으로 이끌며 LIG손해보험 배구단은 초반 돌풍의 핵으로 급부상했다. 하지만 외국인 선수 피라타의 부상으로 팀 전력이 급격히 흔들리며 팀성적은 하향곡선을 그었다. 결국 시즌 중반 박기원 감독의 자진사퇴로 이어지며 팀은 어려운 시기를 겪어야만 했다.
2010. 04 2009~2010 V리그 4위
리그 최연소 감독으로 선임된 김상우 감독 체제에서의 한 시즌은 아쉬움과 함께 큰 여운을 남겼다. 김요한 이경수 등 주포들의 줄부상으로 유난히도 힘든 시즌을 보냈지만, 5년만에 팀은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마지막까지 치열한 접전을 펼쳤지만 팀은 포스트시즌 진출에 만족해야만 했다. 성적과 더불어 LIG손해보험 배구단은 다양한 마케팅 활동을 통해 전년대비 큰 폭으로 관중동원에 성공하여, 2010-2011 V리그 KOVO마케팅상을 수상했다.
2011. 04 2010~2011 V리그 4위
LIG손해보험 배구단은 새 시즌을 앞두고 명세터 출신의 명장 이경석 감독에게 팀의 지휘봉을 맡겼다. "근성있는 배구, 생각하는 배구, 즐기는 배구"를 지향하는 이경석 감독의 지휘 아래 팀은 성적 향상을 위해 최선을 다해 준비했다. 또한 "희망과 나눔의 1등 LIG"를 시즌 캐치프레이즈로 정한 LIG배구단은 최고의 플레이로 팬들과 V1을 향한 희망을 함께하고,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통해 나눔을 실천하는 명문구단의 모습을 보여 줄 것이다.
2012. 04 2011~2012 V리그 6위
2012. 07 수원컵 우승
2013. 04 2012~2013 V리그 5위
"위대한 도전(GREAT CHALLENGE) 1등 LIG"라는 슬로건으로 문용관 감독 이하 모든 구성원들이 최선의 노력을 하였으나 아쉬운 성적으로 시즌을 마무리하게 되었다.
하지만 LIG배구단에게는 오를 수 있는 목표가 있기에 또다시 코트에서 굵은 땀방울을 흘린다.
정상에 서는 그날까지 칠전팔기의 정신으로 결코 포기하지 않는 LIG그레이터스 배구단, 바로 이것 자체가 '위대한 도전 1등 LIG'의 모습이다.
2014. 04 2013~2014 V리그 5위
2015. 04 2014~2015 V리그 6위
2015년 6월 24일, KB금융에 자회사로 'KB손해보험"이 공식출범하였다.
40년의 한국배구역사의 중심에 있던 'LIG손해보험 그레이터스 배구단'이 'KB손해보험 스타즈 배구단'으로 새롭게 시작하는 날이었다.
배구단의 팀컬러는 빨간색에서 노란색으로 변경되었고 엠블럼과 유니폼까지 새로운 디자인으로 모든 것이 새롭게 시작했다.
KB스타즈 배구단은 과거의 전통은 이어가되 악습은 버리고 구단, 스탭, 선수들이 모두 하나가 되어 명문 배구다능로서 면모를 갖춰 나갈 것이다.
2017년 7월 18일, KB손해보험 스타즈 배구단은 경기 의정부시로 연고지를 변경했다.
권순찬 감독을 중심으로 선수단은 'Team KB, Be the Stars'라는 슬로건으로 2017-18시즌을 준비했고, '선수단, 팬 모두 하나가 되는 배구단, 진정한 별이 되다'라는 의미를 새기며 의정부에서의 새로운 시작을 알렸다.
의정부체육관을 홈 경기장으로 결정한 KB배구단은 2017년 10월 15일 홈 개막전을 열었고, 5,527명의 열광적인 홈 팬들 앞에서 개막전 승리를 통해 성공적인 의정부 연고정착을 암시했다.
2017.09 천안 넵스컵 준결승 진출
2018.03 2017-18 도드람 V리그 4위
2019-20시즌 힘들었던 시즌을 마치고 이상열 감독을 중심으로 새로운 시작을 했다.
힘들었던 직전 시즌에 새롭게 만들어진 구호 “할수있다KB”와 코로나19로 힘든 시기를 겪고 있는 의정부시와 함께하자는 의미에서
“할수있다KB, 힘내라 의정부"라는 슬로건을 걸고 출발했다.
1순위로 역대 최연소 외국인 선수인 노우모리 케이타(만19세)를 선발하며 시즌 초반 돌풍을 일으킨 KB배구단은 19승 17패를 거두며
15년 만에 정규리그 3위를 기록하였다.
2020-21시즌 정규리그 3위
KB배구단은 21-22시즌 의정부 연고 정착과 사회공헌을 목표로 “의정부캡이지”라는 슬로건으로 새 시즌을 시작했다.
후인정 감독을 새로운 사령탑으로 선임하고, 코치진을 개편하며, 케이타와의 재계약을 끝으로 다가오는 시즌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시즌 중반 주요선수들의 부상이 있었지만, 트레이드를 통해 팀의 부족한 부분을 보강한 KB배구단은 역대 최고 순위인 정규리그 2위 (승점 62 19승 17패)를 달성했다. 아울러 프로배구 출범 이후 구단 최초로 챔피언 결정전에 올라가는 쾌거를 달성했다.
특히 의정부 체육관에서 열린 챔피언 결정전 2차전은 KB배구단 팬들의 열기와 함성으로 노란 물결이 만들어졌고, 3세트 19-24의 열세를 뒤집으며 챔피언 결정전 첫승을 기록했다. 이날의 노란 물결은 모든 배구 관계자 및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3차전에서는 역대 최장 시간 혈투를 벌이며, 한단계 성장한 모습을 보이며 22-23시즌에 대한 희망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2021-22시즌 정규리그 2위
챔피언 결정전 준우승